미친듯이 퍼붓던 비도 조금 잦아들고 아침 먹고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산책이라도 할까 싶어 7시 반쯤 집을 나섰다 집 근처 컴포즈 커피에 들러 아아를 구입 1500원이라는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 그리고 하루종일 마셔도 될만한 양 게다가 이 날은 드디어 스탬프 6개를 다 받아 쿠폰 한장을 획득 그렇게 썩 맛있다고는 못하겠지만 어차피 카페인충전이 목적이니 괜찮다
어제 최종 면접을 마치고 에이전트로부터 positive라는 연락을 받은 뒤인지라 그간의 답답함과 불안함이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였기 때문에 아침 공기는 유난히 상쾌하고 커피맛은.. 음 그래도 이건 똑같다.ㅋ
나는 일본에서 상당히 이직을 자주했다. 일본에 와서 첫 직장을 가진 후로 이직을 거의 6번 정도 했으니 자칭 이직 마스터라 칭할 정도다 그렇게 회사와 연봉을 레벨업하면서 처음 일본에 왔을때 마음에 품었던 (직장인으로서의) 목표는 올 초 기준으로 어느정도 이룬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간 간과하고 있던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재작년부터 그리고 작년에 더 확 와닿게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나이가 들고, 내 주변도 변해가고, 나의 행복의 기준도 변할 수 있다는 점 평생 월급쟁이로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서 그렇게 정년까지 일하다가 퇴직하고 그간 모아둔 돈 조금과 연금으로 살면 되지 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나는 중년 이후의 내 인생에 대해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재테크에 성공한 자산가들이 하나같이 입모아 추천하는 부자아빠 가난한아빠 책을 나도 물론 읽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내 느낌은, 이건 어차피 선택받은 사람들의 삶이지, 나같은 평범한 직장인과는 좀 멀지 않아? 였던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내 생각과 현실인생사이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 괴리감을, 재작년, 그리고 작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내가 직장 커리어 개발만을 위해 그간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왔다면, 이제 좀 더 시야를 넓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 이건 내가 한국에 살지 않고 외국에 살면서 그냥 비슷한 무리 속에서 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한국에서 주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좀 더 자주 볼 기회가 있었더라면, 친구들과 그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좀 더 있었더라면, 아마 좀 더 성장 밸런스가 맞춰지지 않았을까.
지금 회사는, 물론 이름만큼이나 안정적이고, 특별히 사람들이 엄청 괴롭힌다거나 하는 건 없지만, 아무래도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한다던가 하는 부분이 많이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작년 한해는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가 허용이 되었기 때문에 일보다도 주식공부에 올인하는게 가능했지만 이제 슬슬 오피스 복귀가 예상되고, 더불어 프로젝트들도 늘어나서 더더욱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졌다. 주말도 언제 불릴지 모르니 늘 대기상태고.
그래서 고민을 거듭한 결과, 연봉을 낮춰서 업무 강도가 덜한 포지션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여태 위만 보고 달려왔는데, 연봉을 낮춰서 아래 레벨로 이직을 결심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꽤 오랜 시간 고민을 했기 때문에 미련없이 선택이 가능했던 것 같다 연봉이 조금 낮아지지만, 야근 잔업 주말 근무 절대 없는 포지션이라 다른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 성격상 남는 시간을 그냥 쉬거나 허투루 쓰지는 않을테니, 뭔가를 하긴 하겠지.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두세달전부터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고 2주 전 정말 딱 내가 원하던 그런 자리가 경쟁사에 나왔다는 말을 에이전트에게 듣고 바로 응모하고 인터뷰 프로세스에 들어갔다 인터뷰의 주된 질문은 왜 연봉을 낮춰서 이 포지션에 지원하는가?였다. 솔직히 다 말할 순 없었고 내 나름 잘 포장해서 대답했고 순식간에 파이널 라운드까지 달려 일주일만에 모든 프로세스가 끝났다 섹터는 지금과 동일한 금융 섹터의 역시 글로벌 기업. 연봉이 30퍼 정도 깎이지만, 남는 시간 잘 활용해서 깎인 연봉만큼의 가치를 찾는데에 전력투구해야겠지. 아직 오퍼레터에 사인하기 전이라 또 바뀔 가능성이 0는 아니지만...
고민 정말 많았던 반년이었다 마음 정하고 일도 원하는 방향으로 풀려 이제 속이 시원하다. 지금부터는 제2의 인생 준비를 위해 여러가지 공부를 시작해볼까 한다.